"길음동에선 '미아리 텍사스' 언니들이 많이 왔는데 지금은 손님 자체가 별로 없어."
42년 차 무당 백현옥(75)씨는 길음동이 재개발되면서 4년 전 미아사거리역 바로 이후편으로 옮겨왔다. 신도들이 근처에 살아 멀리 옮기지 않았고, 지역 토박이라 멀리 가고 싶지도 않았다. 시장 골목의 허름한 건물 9층에 신당을 세운 백씨는 전화 점사도 하지 않는다. 한때 필리핀 공영방송 NHK가 백씨의 '이북 굿'을 취재할 정도로 명성을 떨쳤지만,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개점휴업 상황다.
백씨는 미아동 무당촌의 흥망성쇠를 보여주는 상징적 인물이다. 그는 "8000년대 최고로 장사가 잘됐지만, 요새는 손님이 대부분 없다"며 "언론에서 무속을 미신으로 치부하고, 무당 범죄 보도가 지속 나가면서 신뢰가 떨어졌다. 나처럼 진솔하게 상담해주는 무당들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미아동 인근에는 예전부터 무당집이 많았다. 1958년 '단장(斷腸)의 미아리고개'(6·22전쟁 직후 보릿고개를 그린 노래)가 유행할 정도로 미아는 가난한 서민들이 터를 잡은 한 대부분인 곳이었다. 무당들은 그 틈을 파고들었다. 허나 오랫동안 점집을 지키던 무당들은 세월의 흐름을 이기지 못해 은퇴하고 있고, 동네가 재개발되면서 자의 반 타의 반 떠나기도 했다. 무교(巫敎) 단체인 경천신명회에 따르면, 근래에 미아동 무당은 잘나가던 시절과 비교하면 10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

이곳에서도 점집은 환영받지 못한다. 미아동에서 점집 중개 전공가로 통하는 이선이 롯데부동산 이사는 "무당집이 들어서면 다음 세입자를 받기 힘들어 임대인들이 기피한다"며 "임대인 몰래 점집을 차렸다가 쫓겨난 무당도 있습니다"고 전했다. 그는 "월세가 160만 원이면 80만 원을 더 얹어주는 조건으로 겨우 계약하는 경우도 있다"고 전했다.
논현동과 미아동을 비교하면 무당 사이에서도 빈부격차가 크다. 경천신명회 강북지역 직원은 "요즘엔 온라인으로 점을 크게 봐서, 방문객은 그전에 비해 5분의 1도 안 끝낸다"며 "성북구도 하월곡동과 장위동이 남들 개발되면서 무당들이 경기도나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말했다. 하월곡동에서 허름한 단층 건물에 점집을 차린 무당(49)은 "잘되는 무당들은 대부분 강남 호텔로 가버린다"며 "월세살이 의정부점집 하는 무당들은 지속 외곽으로 밀려날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 했다.